낭만인 척하는 죄악
살다 보면 번아웃이 오기도 하고, 그럴 때 주변의 모든 외적인 자극들을 잠시 제쳐 놓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라고들 말합니다. 물론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중에 소중한 것들을 조금 잃을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런 개인적인 결단을 내리는 것은 사실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어쨌든 그 책임만 자신이 지면 되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그렇게 해서 미래의 자신에게 부담을 지우는 것이 물론 좋은 일은 아니겠지만, 그런 경험이 더욱 성장하기 위한 디딤돌이 될 것이라 믿으며 내일을 준비하는 인생의 순간들도 분명 존재할 것입니다.
하지만 한 사람의 결단이 다른 사람의 책임으로 이어질 때도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최근 며칠간 아무 일에도 집중을 못 할 정도로 머리가 멍했었습니다. 친구의 도움으로 그 원인이 알게 모르게 받아오던 어떤 스트레스라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한 학기 동안 진행하는 팀 프로젝트를 다른 과제와 공부 때문에 (실제로 바쁘긴 했지만) 바쁘다 둘러대며 매번 미루다 보니 팀원들과의 신뢰가 조금씩 깨지기 시작했고, 그것이 쌓이고 최종 발표가 다가오면서,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못할 것 같다는 부담감과 불안함으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최대한 발표 준비를 시작해 보려 했지만, 발걸음을 떼기가 힘들었고, 결국 마감 하루 전 이런 사정으로 못하겠다 말하고 다른 팀원에게 모든 업무를 떠넘겨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지만, 어차피 이대로면 기말 발표를 제대로 할 수 없을 것 같았고, 팀을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그게 최선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일단 그렇게 스트레스의 원인을 제거했더니 정신은 다시 맑아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막상 일을 저지르고 보니 조금만 용기를 가지면 됐을 것을 그러지 못했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집니다. 어쩌면 그런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마음의 힘이 있었다면 발표 준비를 잘 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번 학기는 이유 모를 무기력에 빠져 있었고, 트럼펫 연습과 같은 다른 취미생활을 도피처로 삼으며 그것 또한 낭만이라 최면을 걸며 살아왔습니다.
어떻게 보면 팀원들에게 피해를 준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따지고 보면 결국은 귀찮음과 두려움을 회피해오기만 한 제 잘못입니다.
낭만이라는 그럴싸한 화려한 색으로 덧칠하며 책임 없는 쾌락을 즐겼던 지난 학기를 반성하게 됩니다. 그리고 스스로를 죄악으로 침전시키고 있다는 것을 외면한 채 쾌락으로 빠져만 가려는 생각들을 청산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