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안개
졸업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진로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사실 “뭘 해먹고 살아야 하나”라는 것보다는 “무슨 일을 할 때 내가 가장 빛날까”라는 고민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을 해야 나 자신이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을지, 아니면 우리 사회에 진정한 도움이 되는 사람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지와 같은…
그러던 와중 얼마 전 서해 바닷가에 다녀왔습니다. 자정이 지난 새벽, 놀러 온 피서객들을 하나둘 잠재운 펜션촌은 어느덧 밤바다에 고요하게 둘러싸여 있습니다. 모래를 스치는 파도 소리와 함께 해변에 서서 멍하니 바다를 쳐다봅니다. 안개로 가득찬 바다는 경이롭다 못해 공포스럽습니다. 바다를 볼 때면 항상 보였던 수평선이 지금은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과 공기가 마주보는 경계가, 두꺼운 안개에 완전히 가려져 모호하게 되어버린 것입니다. 대자연 앞에서 물밀듯 순간적인 경외감이 몰려오면서, 왠지 그곳으로 헤엄쳐 들어가면 어떠한 작위도 없이 우주와 하나된 듯한 무아지경에 도달할 것만 같습니다.
자욱한 안개로 덮인 수평선을 바라보니 제 미래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뭐가 되었든 분명히 존재하지만 당장엔 보이지 않습니다.
어둠 속을 계속 들여다보고 있으면 안개만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자세히 보면 지나가는 배 한 척의 불빛이 작은 점처럼 빛나고 있습니다. 마치 구름 낀 하늘을 외로이 날아가는 비행기 같습니다. 저 배도 분명 GPS에 의존하지 않는 한에는 말 그대로 오리무중(五里霧中)에 빠져 원하는 곳으로 직진하기가 힘들 것입니다. 안개가 걷힐 때까지 할 수 있는 것은 그 나름의 적막함을 만끽하며 본능에 의거해 바다를 떠다니는 것이겠지요.
삶에 관한 여러 질문에 대해 답을 찾는 과정도 비슷한 느낌일까요? 생각해보면 많은 경우 여러 선택의 기로 사이에서 결단을 내리기 힘든 이유는 선택의 결과를 알 수 없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고민을 하면 할수록 괴로움만 깊어지겠지요. 안개를 걷어내려고 애쓰기보다 안개가 걷힐 시간을 주는 것도 좋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꾸준히 고민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깨달음이 올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까지는 밤바다를 여행하는 배처럼 무엇이든 나를 이끄는 마음속의 무언가를 따라가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겠습니다.